real story [ 29. 역경을 딛고 전도하다 ]

간증

2008년부터 ‘관절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다.

이로 인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서 염증과 통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지니,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었다. 다양한 약을 복용하고, 다양한 치료를 받는 등 낫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다가도 어느새 고통으로 신음하는 날이 반복됐다.2014년부터 염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서서히 뼈에 변형이 진행되었다. 밤새 격렬한 통증과 고열이 지속되어 약 기운으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간신히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통증으로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서 통증을 분산시켜야 했다. 통증을 최소로 낮추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몸이 아프기 전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말을 걸고,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나님과 성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전도도 했었다. 하지만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려졌다. 늘 통증을 달고 사는 사람에게,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곧 지팡이를 짚게 되거나,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병을 얻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수록 낙심은 더해 갔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된 것 같아 자포자기하고 있었다.류머티즘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장애인 급수를 신청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등급 신청을 위해 방문한 구청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장애인과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무척 놀랐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 귀가 안 들리는 사람, 정신적 장애로 혼자 지낼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큰장애를 안고 나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나만큼 건강한 사람도 없구나.’ 하고 깨달아졌다. 통증이 있긴 했지만,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무장된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밀려오는 감동으로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 무엇이든 해 드리고 싶어요. 몸이 조금 아파도 할 수 있어요. 전도하고 싶어요. 내일부터 밖으로 나가 볼게요!’ 해내겠다는 결심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밀려오면서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다. 뜨거운 결심이 서자, 자학으로 억눌렸던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다음 날부터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전도하러 나갔다. ‘주님, 몸이 아프다고 집 안에 저를 가둬 두지 않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 전도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많이 걷지 않고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그날 처음 만난 사람과 점심을 함께 먹으며,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너무 바빠서 예배에 나올 수는 없다고 했지만 성경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 고맙다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 같았다. 5개월이 지나갈 무렵, 전도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며 영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으로 귀한 생명 하나가 탄생하듯이, 나와 주님의 사랑이 전도할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랑과 같은 주님과 딱 붙어서, 함께해야 하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 사랑을 드리고 힘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전도를 나가기 전엔 구체적으로 어떤 생명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은 마음이 감동되어 호랑이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고 했다. 동경에 한 대학을 갔다가, 호랑이 모양의 백팩을 멘 남학생을 보았을 때, ‘이 사람이다’ 확신했다. 만남이 이루어져 성경을 가르쳐 주었고, 예배에도 나오게 되었다.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간증2

하루는 동경대를 방문했는데, 그날은 대학 축제 중이었다. 꼬치를 굽고 있던 한 남학생이 감동되었다. 손님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자리를 뜨려 하니, 순간 ‘아니야! 이 사람이야!’ 하는 영감이 강하게 왔다.“만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연락 주세요.” 하고 명함을 남겼다. 놀랍게도 3일 후에 연락이 왔고,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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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주일예배 후 교회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는데, 그 레스토랑의 여자 매니저가 감동이 되었다. 일하는 중이라 말을 걸기가 애매해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라며 명함을 건넸더니 1시간 뒤에 연락이 왔다. 3일 뒤에 다시 만나서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고, 예배에도 참석했다. 구청 장애인과에서 뜨거운 마음을 받아 전도를 시작하고 1년동안 3명을 전도했다. 전도를 위해 활동했던 것은 오히려 운동이 되었다. 관절에 힘이 생기고 체력도 점점 좋아졌다. 스스로를 옥 죄던 성격에서도 벗어나 정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전도는 다른 사람과 나 모두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신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깊이 깨달아졌다. 전도의 감동을 주셨던것은 나 또한 살리기 위함이었다. 전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정말 다르다는 것도 절감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 말한다. 안된다는 생각을 깨고 행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하나님과 함께 끝까지 행하는 자에게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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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 26. 난치병을 낫게 한 기도 ]

간증

 

어차피 한 번 살다 죽는 허무한 인생, 부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그것만이 최고의 삶이라 생각했다. 2011년 11월 큰아들을 따라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했다. 그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음을 깨닫고, 정식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2012년 3월에는 성경공부 과정을 모두 마치고 수료식까지참여했다. 둘째 아들과 막내아들도 전도해서 함께 교회를 다니게되었다.

 

20대부터 늘 두통을 안고 살았기에 항상 두통약을 복용했다.

그해 5월부터 강한 두통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병원에서CT 촬영을 했다. 의사는 뇌 주름이 없어지고 있어서 빨리 치료를하지 않으면 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처방에 따라 많은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계속되었다. 다른 약도 먹어 봤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통으로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잠이 들면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매일 아이들이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 주어도 깨어나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두통을 참으며 교회를 다니던 11월 1일 금요일, 총회장 목사님 설교를 영상으로 보고 있었다.

영상 설교 중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아픈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시며 “오늘은 내가 아픈 자들을 위해서 꼭 기도해 주겠습니다.” 하셨다.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총회장 목사님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 그때, 누가 옆에 와서 내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이었다. ‘혹시 머리카락이 내려온 건가?’ 하고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 봤다. 순간 따뜻한 사랑의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주님이 오신 것이느껴졌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것이 깨달아졌다.기도를 받는 영적 체험을 한 뒤, 매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고, 두통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할렐루야!

 

교회에 다니기 전에는 알러지 증상도 심해서, 10여 년 간 괴로워했었다.

교회에 다닌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증상이 사라졌었다.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영적인 체험을 한 후 오래도록 고치지 못했던 두통까지 사라지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큰 표적이었다. 기도가 아니었다면 병원에서도, 큰돈으로도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뇌압이 높고 혈관이 얇아서 만일 뇌출혈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없는 상태였다고 한다.최근까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남편도 마음을 열고 있다. 영적으로 구원해 주시고, 육적 고통에서도 해방시켜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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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 25. 주님은 나의 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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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전에는 빵집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역에 위치한 3층 건물로 송파구에서 제일 큰 매장이었다. 근처에는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고, 매장 주변으로 초·중·고등학교가 6개나 있어서 손님이 매우 많았다.

 

 

2010년 7월 15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7시에 출근했다.

평소 같았으면 샌드위치를 만들고, 빵 진열대도 정리해야 했고, 아침부터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카운터도 봐야 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안 잡혀서 1, 2층 매장을 계속 오르내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니도 속으로 ‘얘는 쉬는 법이 없이 일하는 앤데, 오늘은 이상하네… 왜 그러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손님도 거의 없었다. ‘이럴 때 잠깐 더 쉬자!’ 하며, 언니와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쾅!!!!!!” 하고 귀청이 터질 듯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승용차 한 대가 매장의 대형 전면 유리를 뚫고 들어와 있었다. 1층 전면 유리가 내려앉아 버렸다. 우리는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못하고, 망연히 사고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매장은 8차선 도로가 있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골목에서 승용차가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빵집으로 돌진한 것이다. 대형 유리창이 다 깨져 내려앉고, 벽돌이 무너졌다. 홀에 있는 테이블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케이크 냉장고까지 부서져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승용차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대리석 테이블, 유리로 된 냉장고가 카운터 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평소처럼 빵 정리를 했거나, 카운터에 있었더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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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고 아찔하여 ‘주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하게 된다.이날 사건은 저녁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사연을 들은 쌍둥이 여동생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교회에 나왔고, 그 뒤로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주님께서 항상 나를 지켜보시고 보호해 주시며 감동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주시니오직 감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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